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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서울시] 100년 역사 북촌 '백인제 가옥', 역사가옥박물관으로 새단장 후 일반시민에 개방

by 초록배 2015.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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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 가옥과 함께 서울 종로구 북촌을 대표하는 근대 한옥으로, 북촌의 한옥문화와 일제강점기 서울 최상류층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100년 역사의 '백인제 가옥'(북촌로7길 16)이 2015년 11월 18일(수)부터 시민에게 개방됩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 http://www.seoul.go.kr/

서울역사박물관은 '백인제 가옥'을 일부 원형과 달라진 부분을 건축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고 건축 당시 서울 상류층의 생활상을 연출 전시해 '역사가옥박물관'으로 조성, 시민에게 공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지난 4월 박물관 개장 준비에 착수한지 7개월만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앞서 두 차례 '백인제 가옥'을 시범 개방한 바 있으나 가옥 내부가 아닌 '건물' 자체에 대한 탐방 위주로 이뤄졌던 것과 달리 가옥 내부에 당시 시대상과 생활상을 전시한, 건물 안팎이 박물관이 돼 시민에게 개방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조선시대 최고 권력가, 재력가들이 살았던 북촌 일대 대형한옥 중 당시 규모로 오늘날까지 남은 것은 '백인제 가옥'과 '윤보선 가옥' 두 채 뿐입니다.
'윤보선 가옥'은 현재 거주 중인 사택으로, 대형한옥이 일반 시민에게 상시 개방되는 것은 '백인제 가옥'이 최초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바깥주인(사랑방), 안주인(안방), 할머니, 아들내외(건넌방) 등 가옥에 거주했던 가족구성원에 따라 각 방별로 전시 개념(콘셉트)을 달리하고, 의걸이장, 이층장 등 전통 목가구와 병풍 등 소품 150여 건을 연출 전시해 현장감을 높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선시대 전통 목가구는 물론 당시 유행했던 수입 중국가구와 축음기 등 서양 문물을 혼용해 전시했으며, 소품류의 경우 한옥에 필수적인 병풍, 보료, 발, 방장 등을 설치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사계절의 시간성을 반영하도록 했습니다.

또, 마지막 거주자인 백인제 박사와 관련된 사진자료와 의학자료, 골동품 수집 취미 등을 반영한 전시품 30여 점을 추가로 전시했습니다. 박사가 운영했던 출판사인 수선사의 간행물도 함께 전시됩니다.

'백인제 가옥'은 1913년 당시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460㎡ 대지 위에 전통방식과 일본양식을 접목해 지은 근대 한옥입니다.
부근 한옥 12채를 합친 널따란 대지에 당시 새로운 목재로 소개됐던 압록강 흑송을 재료로 지은, 규모는 물론 건물 그 자체로도 당시 최고급 가옥입니다.

 



백인제 가옥에 들어서면 당당한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 아담한 별당채가 펼쳐집니다.
특이한 점은 안채와 사랑채가 확연히 구분되는 전통한옥과 달리 백인제 가옥에는 이 둘을 연결하는 복도가 있고, 전통한옥에서는 볼 수 없는 2층 공간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채 전체의 전면에 유리 창호를 사용해 보온 등을 고려한 근대 한옥의 특징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안채의 대청과 툇마루는 모두 전통적인 우물마루로 구성된 데 반해 사랑채는 툇마루와 복도는 물론 사랑대청까지 모두 일본식 장마루를 적용했습니다.
한상룡이 일본 고위 인사들을 위한 연회를 염두에 두고 이 건물을 지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실제 이 건물에서 역대 조선총독부 총독들을 비롯한 당시 권력가들은 물론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2세도 연회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한상룡의 손을 떠난 이 가옥은 1935년 개성 출신 민족 언론인 최선익의 소유가 됐고, 또 다시 1944년에는 당시 외과 명의이자 오늘날 백병원의 창립자인 백인제 박사의 소유가 됐습니다.

1968년부터는 백인제 박사의 부인 최경진 여사가 원형을 거의 보존하며 이 집에 살아오다가 지난 2009년 서울시가 최 여사로부터 가옥을 매입했습니다.

현재 명칭은 마지막 소유주인 백인제 박사에서 유래했으며, 역사적인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 22호로 지정됐습니다.

 



백인제 가옥 역사가옥박물관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 시간은 평일.주말 오전 10시~오후 5시(17시)입니다(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관람 방법은 예약이 필요 없는 자유관람과 사전 예약이 필요한 가이드투어(소요시간 50분, 하루 4번) 2가지가 있습니다.

예약은 서울시 공공예약시스템(http://yeyak.seoul.go.kr)에서 하면 됩니다.

기타 문의사항은 전화 02-724-0294

☆ 가회동 백인제가옥 주소는 서울 종로구 북촌로7길 16

 

 



★ 참고 : 백인제 가옥의 주인들

● 한상룡(韓相龍, 1880-1947) - 거주기간 1913년 7월 ~ 1928년 7월
일제강점기 은행가인 한상룡은 1901년 경부철도 기공식에서 완순군 이재완과 인연을 맺게 되어 1902년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한성은행 개편에 참여하여 한인 자본가들과 일제 권력을 연계하고 각종 회사의 설립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일본의 한국 강점 이후 그는 당시 조선재계의 1인자가 되었다.
 이 시절의 배경에는 가회동의 대저택이 있었다. 한상룡은 1906년부터 가회동 일대의 민가를 구입해 1913년 대저택을 완공했다. 한상룡은 이 저택을 조선 양반문화를 보여주는 자료로 활용하여 역대 조선 총독은 물론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2세까지 이 집을 방문했다.

● 최선익(崔善益, 1905~?) - 소유기간 1935년 1월 ~ 1944년 8월
최선익은 어려서부터 서울로 올라와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녔으나 양부가 돌아가자 귀향하여 가업과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는 1924년 조선일보사에서 주주이자 기자로서 언론활동을 시작했다. 1932년 조선일보에서 물러난 최선익은 다시 중앙일보를 인수하였다. 1935년 봄 조선중앙일보 부사장직에서 사임하고나서 구 한상룡 가옥을 매입하였다. 이후 최선익은 거의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였지만, 가옥에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대문의 위치를 변경하고 필지정리를 하는 등 이 시기동안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 백인제(白麟濟, 1898년~미상) - 소유기간 1944년 9월 ~ 1968년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였던 백인제는 경성의학전문학교 4학년이었던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그는 도쿄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인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 외과주임 교수가 되었다. 당시 그는 최초로 신장 적출 수술에 성공하고 장폐색증 환자를 치료하는 등 조선 제일의 외과의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41년 그는 스승이 운영하던 병원(현재 서울 백병원 자리)에 백인제 외과의원을 새로 개업했다. 1944년 백인제는 이 가회동의 거택을 최선익으로부터 매입했다. 그가 설립한 백인제병원은 오늘날 인제대학교 백병원의 모태가 되었다.
 
● 최경진(崔炅珍, 1908년~2011년) - 소유기간 1968 ~ 1988년 8월
백인제의 부인인 최경진은 실질적으로 가장 오랜 기간 백인제 가옥을 지킨 분이다. 최경진은 1928년 백인제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으며, 백인제 병원의 제 2대 이사장으로 병원을 재건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가옥의 소유기간은 1968년부터 1988년 아들인 백낙훤에게 소유권을 넘길 때까지 20년 정도였지만, 사실상 1944년부터 거의 60여 년의 기간동안 백인제 가옥의 주인으로서 현재까지 백인제 가옥이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 출처 :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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