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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미술관

슬픈 역사를 간직한 덕수궁 중명전 관람기 세번째

by 초록배 2012.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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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중명전 세번째 이야기는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한 고종황제와 신하들에 대하여 알아볼 수 있는 3전시실에서 시작합니다.


중명전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자,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결정한 고종황제의 거처이기도 합니다.

3전시실과 4전시실은 연결된 구조로,
3전시실에서는 주권 회복을 위한 대한제국의 투쟁,
4전시실에서는 헤이그특사의 도전과 좌절이라는 주제로 전시된 유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3전시실 초입에는, 2층에 있던 5전시실에서 옮겨온,
고종황제와 관련된 유물들도 유리탁자 안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유명한, 헤이그 특사 판견 관련 내용입니다.


1907년 4월, 고종황제께서는 같은 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을사늑약의 강제체결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해 특사를 파견합니다.

특사 세 분은 이준, 이상설, 이위종.
만국평화회의보에 실린 그분들의 사진은 역사교과서에도 등장합니다.


고종황제께서 작성하신 특사위임장입니다.
왼쪽 가운데, 대황제(大皇帝)라는 글자 바로 아래에 특유의 친필 서명이 보이는군요.
앞서 본 을사늑약 문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황제의 서명입니다.


요즘같이 제트기가 없던 시절, 극동아시아의 대한제국에서 유럽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습니다.


그 옛날 여권 모습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만국평화회의장 모습입니다.


대한제국의 특사들을 비롯하여,
많은 약소국 특사들은, 회의장에 발조차 들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헤이그특사 중 한 분, 이준 열사는 현지에서 순국하셨고, 나머지 두 분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는데, 그 중 이위종 선생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특사들을 지지한 외국인들에 대한 소개도 있습니다.


이렇게 중명전의 모든 전시실을 둘러 봤습니다.

돌이켜 보니,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관람을 했네요^^;;
다시는 이런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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